바람소리
맛은 과하게 달지 않고 단호박 껍질 근처의 쌉싸름함과 묵직한 단맛이 그대로 살아있어요. 푹 삶아진 강낭콩이 씹힐 때마다 팥죽 비슷한 구수한 냄새가 훅 올라오고, 중간중간 들어있는 찹쌀 새알심이 쫀득하게 씹혀서 씹는 맛도 꽤 쏠쏠합니다ㅎㅎ
뜨끈한 게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쑥 내려가는데, 뻣뻣하게 굳어서 쥐어틀리던 명치가 사르르 풀리더라고요. ㅎㅎ위산 때문에 속이 불타는 것처럼 쓰리던 게 호박죽 점성 덕분인지 싹 덮이면서 진정됐어요. 밥 종류 잘못 먹으면 바로 얹히거나 헛구역질 나오는데, 이건 소화 과정이라는 게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속에서 그냥 흡수되더라구요
끼니 놓쳐서 속 다 뒤집어지고 위경련 오기 직전일 때 이만한 응급처치 음식이 없어요. 죽 전문점에서 파는 흰죽은 맹맹해서 먹기 싫고 소화도 너무 빨리 돼서 금방 허기지는데, 호박죽은 새알심이랑 콩 덕분에 은근히 배가 든든하게 찹니다. 자극적인 양념 하나 없이도 당 충전이랑 속 달래는 걸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니까, 굶다가 갑자기 첫 끼 챙겨야 할 때 무조건 쟁여두고 먹을 만해요.
댓글17